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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거벗은 한국사에서는 킹메이커인 한명회를 다루었습니다. 한명회는 조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지금부터 한명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453년 한명회는 세조를 도와 계유정난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조선의 2인자로서의 삶을 평생 살아왔지만 결국 비참한 인생의 결말을 맞이한 인물이죠.

     

    한명회는 38세가 첫 관직을얻었고 첫 관직은 개성 경덕궁의 궁지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왕실의 종친인 수양대군과의 만남이었습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과 인연이 있던 친구 권람을 통해서 수양대군을 소개시켜줄 것을 제안했고, 책사를 찾던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만났습니다. 

    이때부터 수양대군과 함께 하면서 가장 먼저 계유정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키고 직접 왕우에 앉았습니다. 바로 조선의 7대왕 세조가 탄생했습니다. 한명회는 세조에게 위협이 될만한 인물을 제거하며, 견제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456년 사육신 사건입니다. 

    한명회는 세조의 옆에서 승승장구 하기 시작했습니다. 좌의정, 우의정, 마침내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영의정까지 오르게 되면서 조선의 제2인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한명회의 삶이 순탄대로만은 아니었습니다. 1467년 이시애의 난이 일어 납니다. 이때 그는 신숙주와 함께 투옥되었다가 풀려났습니다. 이시애가 반란을 모의했는데 신숙주, 한명회와 내통했다고 자백을 한 것이었습니다.

    2인자로서 최고의 권력을 누린 한명회는 1476년 한강 둔치에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여생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영원한 2인자였떤 한명회 1487년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한명회에게 불행은 사후에 찾아왔습니다. 연산군은 한명회에게 폐비 윤씨의 죽음을 막지 않는 것에 대한 벌을 주었습니다. 무덤을 파해쳐 시신의 목을 베는 부관참시의 형벌을 주었습니다. 한명회의 시신은 토막 나고, 해골이 조선 거리에 걸려 모욕을 당하게 됩니다. 쓸쓸한 사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벌거벗은 한국사 킹메이커 한명회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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