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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연합뉴스

     

     

     

    연세대 골리앗 서장훈 

    휘문고 서장훈의 진로가 모든 대학의 관심사였습니다. 연세대를 포함한 모든 팀들이 서장훈을 영입하기 위해서 공을 들였고 서장훈의 선택은 연세대였습니다. 방송에서도 말했듯이, 친한 형들이 많았다는 이유였습니다.

    1993년 연세대에 입단하며 이상민, 문경은, 김훈, 우지원과 함께 농구대잔치서 기아자동차를 누르게 됩니다. 이는 대학팀이 실업팀을 이기는 최초의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신입생 서장훈은 그야말로 독보적이었습니다. 94년에도 21점 20리바운드 10블록으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는 등 그의 기세는 더욱 거셌습니다. 94년 삼성과의 플레이 오프에서 삼성의 센터 박상관의 거친 파울 속에 서장훈을 쓰러지고 맙니다. 그때 서장훈은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다는 병원의 진단으로 한국 농구에 환멸을 느껴 95년 미국의 산호세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편입생은 1년간 뛸 수없다는 규정을 인지 하지 못한 채 갔기에 서장훈은 1년만에 다시 귀국을 하게 됩니다. 복귀 후 황성인, 김택훈, 조상현, 조동현과 함께 다시 연세대를 최강팀으로 이끌었습니다.  대학에는 더이상 적수가 없었습니다. 

     

    국보센터 서장훈

    서장훈은 프로에 진출할 때 팀과 갈등을 겪게 됩니다. 신생팀인 진로그룹은 연세대에 대한 우선권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서장훈은 이는 선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진로가 창단하기 전 부도가 나고 농구팀은 SK그룹으로 인수가 되고, SK에서 최고 대우를 약속하자 서장훈은 SK나이츠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서장훈이 입단한 SK는 현주엽까지 가세하면서 우승1순위로 떠오르게 되었지만, 두 명의 스타의 시너지는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현주엽은 조상현과 트레이드 되면서, 황성인 조상현 하니발 재키존스 서장훈이라는 강력한 팀이 결성 되면서 99-00 시즌을 우승으로 이끌게 됩니다.  서장훈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01-02시즌 FA자격을 얻은 서장훈은 삼성 썬더스로 이적하게 됩니다. 사실 삼성으로 이적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농구 대잔치 시절 자신에게 린치 가까운 플레이를 벌인 것이 바로 삼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큰 부상을 일으켰던 박상관 역시 삼성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장훈이 삼성에서 입단하고 이창수, 박상관, 우지원이 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서장훈이 합류한 삼성은 9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05-06시즌에는 챔피언 결정전 우승까지 차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감독이었던 안준호 감독과의 갈등으로 또 한번의 FA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서장훈의 세번째 팀은 전주KCC였습니다. 당시 좋아하던 이상민과 함께 뛰며 우승을 하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으나, KCC는 보호선수로 이상민을 제외시켰고 이상민은 삼성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 서장훈을 비롯 모든 KCC선수들과 팬들이 의욕을 잃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장훈은 심기일전에서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끌었습니다. 우승까지는 실패했지만 서장훈은 역시 서장훈이었습니다. 그 후 KCC 1순위 신인으로 하승진이 합류하게 되고, 출전 시간 분배를 해야만 했습니다. 서장훈은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인천 전자랜드로 이적하게 됩니다.

     

    전자랜드에서는 연세대 시절 은사였던 최희암감독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전자랜드의 6강을 이끌었고, 문태종 - 하버트 힐 -서장훈의 전자랜드는 무서웠고, 전자랜드의 커리어하이인 정규리그 준우승까지 이끌었습니다.

     

    또 한 번의 FA자격을 얻고 전자랜드와의 1년 계약으로 잔류를 선언햇으나 사인&트레이드 방식으로 LG세이커스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본인도 몰랐었고, 이 때 팬들의 반발은 거셌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장훈의 LG이적은 본인에게도 최악이 되었습니다.  노장이 되어서 이동했지만, 문태영과도 롤이 겹쳤으며,  LG는 당시 애런 헤인즈 중심으로 공격을 펼쳤기에 서장훈에게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때 은퇴 고민을 하게 되었지만 서장훈은 마지막 투지를 불태우기 위해서 또 한번 이적을 선택합니다.

     

    서장훈의 마지막 팀은 부산KT였습니다.  서장훈은 연봉1억을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KT에서 많은 출장시간을 보장 받지는 못했지만 농구 인생의 마지막을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지막 홈경기서 33득점을 기록하며 은퇴식과 함께 25년의 농구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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