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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중앙포토

     

    한국 농구의 중심이었던 농구 대통령 허재 

    허재는 용산중 - 용산고 -중앙대학교를 나와 실업팀 기아자동차(1988~1997)에서 선수생활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실업팀에서 허동택트리오를 결성하면서 기아자동차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농구대잔치 5회 연속 우승하는 등 기아자동차를 막을 수 있는 팀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허재는 1996년 음주운전 후 면허가 취소된 상태에서 또 한 번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국가대표 자격이 박탈되었습니다. 그후 프로가 출범하면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1997~1998)에서 첫 프로 생활을 시작합니다. 연봉 1억2천으로 연봉킹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기아에서의 선수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감독인 최인선 감독이 허재 길들이기에 나서며, 허재를 벤치에 앉히고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 후 허재는 구단에 공식적으로 트레이드를 요청하게 됩니다. 사생활 논란과 훈련 태도가 좋지 않았던 허재를 원하는 팀은 없었습니다. 결국 조건 없이 허재는 팀에 복귀하게 됩니다. 각성한 허재는 무서웠고 현대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피를 흘리는 투혼까지 보여줬으나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허재는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MVP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시즌 후 허재는 정인교와 트레이드 되어 나래블루버드(1998~2004)로 이적하게 됩니다.

    노장이 된 허재는 자신을 팀에 맞춰 플레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주성과 함께 우승을 한차례 이끈 후 은퇴를 하게 됩니다.

    국가대표의 허재도 무서웠습니다. 1990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농구월드컵 이집트와의 경기서 넣은 54점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불낙이야? 이게 불낙이야? 호랑이 감독 허재

    허재는 전주KCC(2005~2015)에서  10년간 지도자 생활을 했습니다. 40세의 나이에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허재는 지도자연수를 하던 중 신선우 감독이 LG세이커스로 옮기면서 공석이 된 KCC감독 제안을 받고 지도자 연수를 중단 하고 돌아왔습니다. 감독으로 맞은 첫시즌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트리오와 찰스 민렌드를 앞세워 6강에 성공했지만 챔피언 결정전 진출을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성원이 은퇴하면서 허재는 리빌딩을 준비하게 됩니다.  FA시장에서 대어인 서장훈과 이재현을 동시에 영입하면서 기존의 이상민, 추승균과 함께 우승을 위한 발걸음을 시작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서장훈의 영입과정에서 이상민이 보호 선수에서 제외되며, 삼성썬더스에서 이상민을 지명하게 됩니다.

    이상민의 이적으로 충격받은 팬들은 허재, 최형길 단장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이상민이 떠난 상황에서도 KCC는 정규리그 2위를 기록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한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탈락하게 됩니다.

    2008~2009시즌에 허재는 NBA에서 뛴 적 있는 하승진을 1순위로 지명하게 됩니다. 기쁨도 잠시 서장훈과 하승진의 공존의 문제가 또 다른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출전 시간을 보장 받기를 원했으며 결국 허재는 하승진을 선택하며 서장훈과 가드 김태환을 전자랜드에 보내고, 조웅현, 강병현 정선규를 받는 2:3트레이드를 성사시킵니다. 곧바로 조직력을 다져 단독3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시켰습니다.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해 삼성썬더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 하게 되었습니다. KBL최초로 선수-감독으로 우승을 차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후 2010-2011시즌에 한 차례 더 우승을 차지 하게 됩니다. 허재는 2014-2015년에 성적 부진으로 돌연 사퇴를 하게 됨으로써 감독 커리어를 마무리 했습니다.

    감독 허재는 " 선수 장악능력은 KBL 최고다." 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잦은 항의로 인해 심판과의 사이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허재는 10시즌 통산 531경기 출전해 252승 279패 0.475승률을 기록했습니다.  2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안겼습니다.

     

    데이원자산운용 사장 허재

    선수와 감독으로서 허재는 강한 임팩트를 보여주었습니다. 농구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한국 농구가 걸어온 역사에 있어서도 빠지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허웅과, 허훈이라는 두 아들도 프로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허재는 국가대표감독까지 엮임 후, 한동안 휴식을 하다가 연예계에 뛰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농구계로 돌아가고싶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결국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습니다.

    고양 오리온스를 인수한 데이원자산운용의 책임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파격적인 인사였고, 구단은 허재 사장과 김승기 감독에게 모든 운영 권한을 위임한 상태 입니다.  경영진으로 돌아온 2022-2023년 허재의 활약을 이제는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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